제목 : 삼양선사유적(실제움집터)
주제 : 삼양선사유적유적전시관선사시대집터
내용 : 실제 생활을 하던 원형주거지는 직경 4m 내외이며 굴립주 건물은 2×2칸 규모로 직경 50㎝ 깊이 30㎝ 정도의 대형주혈이 2m 간격을 두고 배치되었다. 주변에 배치된 기둥구멍(柱穴)은 간단한 시설이나 굴립주 건물의 보조기둥으로 이용하기 위해 뚫어놓은 것으로 생각된다. 주거지 내부에서 출토된 유물은 삼양동식 토기가 주류를 이루며 돌도끼(石斧)와 공이석기(敲石) 방추차 등이다.


제목 : 삼성혈(전시관 내부)
주제 : 삼성혈삼신탐라제주전설고을나양을나부을나전시관
내용 : 삼성신화와 관련된 사료를 전시하고 있는 전시관 내부는 삼성혈 관련 유적지 모형과 고문헌 현판 등이 전시되어 있는데 특히 제주도의 모습을 본뜬 모형이 눈에 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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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삼양선사유적(전시관)
주제 : 삼양선사유적유적전시관선사시대
내용 : 제주삼양동선사유적은 사적 제416호 (1999.11.15 지정)로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양2동 1660-5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삼양동선사유적은 기원전·후 1세기를 중심으로 한 시기의 집자리 약 230여기가 확인된 대단위 마을 유적이다. 이 마을 안에서는 크고 작은 집자리 창고 저장공 야외토기요지 불땐자리 마을 공간을 구획한 돌담과 배수로 폐기장 조개무지 고인돌 등이 확인되었다. 지금까지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집자리는 원형주거지 장방형주거지 부정형주거지 창고지 등이다. 원형주거지가 가장 많이 확인되었으며 대부분 한국 본토의 이른바 송국리형주거지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 유적지에서 출토된 옥제품 등으로 보아 당시 삼양동선사인들은 「삼국지」등의 기록처럼 중국·왜 등과의 교역을 통하여 축적된 부를 토대로 탐라국의 기틀을 다진 것으로 짐작된다.


제목 : 삼양선사유적(움집)
주제 : 삼양선사유적유적전시관선사시대집터
내용 : 삼양동 선사유적지의 주거지는 중앙에 공터를 중심으로 10여기의 집자리가 둘러싼 형태를 취하는 것이 가장 특징적이며 현재 야외전시장에는 삼양동유적의 성격을 가장 잘 나타내었던 Ⅱ구역의 주요한 집자리가 복원되었다. 복원된 움집은 중국 한나라시대(漢代가)의 환옥과 함께 중요유물이 출토되었고 규모에 있어서도 가장 큰 Ⅱ-2구역의 6호 집자리와 Ⅱ-1구역의 고상식가옥 1동 방형움집 1동 원형움집 11동 등 도합 14동이다. Ⅱ-2구역의 6호 주거지를 복원한 대형 원형움집내부에는 당시 삼양동민의 생활상을 재현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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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서복전시관(서불동상)
주제 : 서불저복전시관
내용 : 중국 진시황 때 사자 서불(徐福=徐市)이 삼신산의 하나인 한라산에서 불로초를 구하려고 동남동녀 500쌍을 거느리고 동쪽으로 왔다가 정방폭포 암벽에 서불과지(徐市過之)라는 글자를 새기고 서쪽으로 돌아갔다고 전해지고 있다.


제목 : 서복전시관
주제 : 서복전시관서복
내용 : 중국 진시황 때 사자 서불(徐福=徐市)이 삼신산의 하나인 한라산에서 불로초를 구하려고 동남동녀 500쌍을 거느리고 동쪽으로 왔다가 정방폭포 암벽에 서불과지(徐市過之)라는 글자를 새기고 서쪽으로 돌아갔다고 전해지고 있다. 서복전시관은 이러한 설화에 기초하여 중국인 등 외국인 관광객에게 문화적 볼거리를 제공하기위해 정방폭포 인근에 건립되었다. 중국과 일본의 역사를 잇는 구비문화유적으로서 자원적 가치가 높다. 전시관에는 서복전시실(불로불사의 꿈·서복의 여정·영주산 시로미 등 서복문화전시)과 영상물(에니메이션 실사) 상영관 서귀포시역사관(자연·역사·문화사료전시)이 있으며 주변해안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와 쉼터 등이 조성되어 있다. 전시관 앞쪽으로 공원이 조성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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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아프리카박물관
주제 : 아프리카박물관박물관
내용 : 아프리카박물관은 1998년 11월 서울 대학로에서 아프리카라는 다소 생소한 문화를 토대로 첫 문을 열었고 2004년 12월 새로운 문화적 도약을 위해 제주도 서귀포시 중문관광단지에 박물관 건물을 신축하고 이전하였다.


제목 : 소리섬박물관
주제 : 소리섬박물관박물관
내용 : 소리섬박물관에서는 120여년전 에디슨 축음기 소리부터 북한의 다양한 소리문화까지 세계 각국의 소리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 또한 보고 듣고 만지고 직접연주하는 동안 세계 각국의 문화를 체험하고 다채로운 청각경험을 할 수 있는 생생한 체험형 교육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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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월정사(대웅전)
주제 : 월정사대웅전불교
내용 : 월정사 가운데에 자리잡고 있는 대웅전은 불교의 선종 계통 사찰에서 석가모니불을 본존불로 모시는 당우로서 대웅보전이라고도 한다. 항상 가람의 중심이 되는 전당으로 큰 힘이 있어서 도력(道力)과 법력(法力)으로 세상을 밝히는 영웅을 모신 전각이라는 뜻이다. ‘대웅(大雄)’은 고대 인도의 ‘마하비라’를 한역한 말로 법화경에서 석가모니를 위대한 영웅 즉 대웅이라 일컬은 데서 유래하였다.


제목 : 월정사(극락보전)
주제 : 월정사극락보전극락불교
내용 : 월정사 자리는 1871년 무렵부터 토굴을 마련하고 수행하던 스님이 머물럿던 곳이라고 한다. 제주 4.3 사건이 끝난후 월정사는 김덕수 스님을 기리기 위해 1956년 월정사 경계 동쪽에 비석을 세우고 추모의 마음을 묻어 놓았다. 월정사 대웅전 옆에 자리잡고 있는 극락보전은 불교에서 서방 극락정토의 주재자인 아미타불을 모시는 사찰 당우로서 극락보전·무량수전·무량전·보광명전(普光明殿)·아미타전이라고도 한다. 예로부터 극락정토신앙이 강하여 내부 구조는 대웅전만큼이나 화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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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제주4.3사건(평화공원 위령탑 원경)
주제 : 4.3 평화공원평화공원4.3사건4.3위령탑
내용 : 제주 4·3 사건(濟州 4·3 事件)또는 제주 4·3항쟁은 1948년 4월 3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대한민국 제주도에서 김달삼과 남조선로동당세력이 주도가 되어 벌어진 무장항전과 그에 대한 대한민국 국군의 강제진압을 가리키는 말이다. 4·3 사건은 남조선 단독정부 수립을 의미하는 5.10 총선을 방해하기 위해 시작되었다가 한국 전쟁이 끝날 때까지 계속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2만5천~3만 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학살당했다. 이 중에는 무장대에 의해 희생된 사람도 포함되어 있으나 대부분은 서북청년단 등의 극우단체와 군경 토벌대에 의한 희생자였다. 제주 4.3학살피해자 가족과 시민단체에서 줄곧 진상 규명과 명예회복을 요구하였으나 역대 정부는 이를 무시하였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1998년 11월 23일 김대중 대통령이 CNN과의 인터뷰에서 제주 4·3은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이 많으니 진실을 밝혀 누명을 벗겨줘야 한다.는 발언이 있었고[5] 1999년 12월 26일 국회에서 제주4ㆍ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이 통과되고 2000년 1월 12일 제정 공포되면서 정부 차원의 진상조사에 착수하게 되었다. 조사위원회의 의견에 따라 2003년 10월 31일 노무현 대통령이 국가권력에 의해 대규모 희생이 이뤄졌음을 인정하고 제주도민에게 공식 사과를 하였다. 4.3위령탑은 대립과 갈등을 해소하고 제주도민 화합과 민족의 통일을 염원하며 평화 의지와 영원함과 완전함을 추구하는 기원공간을 상징하고자 제작하였다.


제목 : 월정사(종각)
주제 : 월정사종각불교
내용 : 월정사 입구 오른편에 있는 범종은 불교의식에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사용하는 사물 중의 하나로 흔히 종루나 종각을 짓고 달아두고 있다. 오늘날에는 과거처럼 종소리를 듣는 일이 흔치 않지만 종소리를 듣고 모여서 설법을 듣는 자는 해탈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종교적 의미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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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제주돌문화공원(19계단)
주제 : 19계단돌문화공원
내용 : 1999년 1월 19일은 북제주군과 탐라목석원이 기념비적인 제주돌문화공원을 조성하기로 협약한 날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전설의 통로 설문대할망과 오백장군 위령탑으로 가는 길목에 19계단을 설치하였다. 돌박물관 주출입구도 19계단이다.


제목 : 제주교육박물관
주제 : 교육박물관제주교육박물관
내용 : 1996년 4월 29일 개관한 제주교육박물관은 5579평방미터의 면적에 도서류 8686점 문서류 2314점 기록류 1995점 교구류 1126 민구류 2805점 복식류 565점 기타 1202점 등 총 18693점의 자료를 보유하고 있다. 그 중 1399점의 자료가 4개의 전시실과 야외전시실에서 일반인들에게 공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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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제주돌문화공원(김녕서문하르방당 재현)
주제 : 김녕서문하르방당돌문화공원
내용 : 이 당의 유래는 김녕 마을 한 어부의 꿈에 돌이 나타나 “나를 곱게 모셔 주면 자식 귀한 사람들에게 자식 낳게 해 주겠다”고 하자 어부는 바다에서 돌을 건져 올려 미륵으로 모시기 시작했다고 한다. 미륵돌을 신체로 삼고 그 앞에 잘 다듬은 제단을 놓았다. 자연석으로 높이 약 60cm의 안쪽 울타리를 쌓았고 바깥쪽으로 높이 2m의 울타리를 더 둘러쌓았다. 서문하르방 은진미륵 2신위를 모시는 당이며 신목은 예덕나무이다. 이 당의 신은 기자신앙과 미륵신앙이 하나로 결합된 형태의 산육신으로 아들 낳기를 기원하면 효험이 있다고 전한다. 제일은 정해져 있지 않고 택일해서 다닌다.


제목 : 제주돌문화공원(기념석탑)
주제 : 기념석탑석탑돌문화공원
내용 : 2기의 기념석탑은 북제주군과 목석원을 상징하는 돌탑이다. 제주돌문화공원 제1단계 사업계획이 성공적으로 조성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북제주군과 목석원의 협약사항에 따른 신의성실의 원칙을 준수했기 때문이다. 이 돌탑은 민ㆍ관이 협력하여 이루어낸 성공사례의 기념비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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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제주돌문화공원(동자석)
주제 : 동자석돌문화공원
내용 : 동자석은 평균 신장 1m 이하의 작은 석상이다. 다공 현무암이라는 재질의 특수성과 단순하면서도 영적 분위기를 잘 살린 표현 방법은 제주 동자석만이 갖는 독특한 특징이다. 문인석과는 달리 민머리이거나 머리를 길게 땋은 모양 쪽진 모양 등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상반신만 표현된 신체와 앞가슴에 촛대 술병 술잔 꽃 부채 표주박 홀 등의 물건들을 두 손 모아 받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죽은 사람을 위한 살아있는 사람들의 지극한 정성의 징표로 보기도 한다. 무덤을 이장할 때 동자석은 보통 그 자리에 묻어 놓는 경우가 많고 일부는 신당 등에 옮겨져 신앙의 대상이 된다. 동자석에는 무속신앙 불교 및 유교적인 요소들이 융합되어 제주인들의 심성이 잘 반영되고 있다.


제목 : 제주돌문화공원(동자복과 서자복 복제)
주제 : 동자복서자복돌문화공원
내용 : 동자복과 서자복은 옛 제주성 바깥 동쪽과 서쪽에 성안을 지키는 듯 세워져 있었다. 구전으로는 ‘복신미륵ㆍ자복ㆍ자복미륵ㆍ미륵ㆍ큰어른 등으로 불려져 왔다. 미륵불은 득남 해상안전 풍어 등을 기원하는 민간신앙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한 집안의 조상신으로 숭배되기도 한다. 즉 복신미륵으로 전하는 동자복과 서자복은 제주도의 미륵신앙을 나타내고 제주목의 수호신적 기능을 지녔다고 추정된다. 동자복과 서자복의 제작시기는 확실치 않으나 전문가들은 고려시대 후기 혹은 조선시대 후기로 추정하고 있다. (제주도민속자료 제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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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제주돌문화공원(설문대할망과 오백장군 위령탑)
주제 : 설문대오백장군위령탑돌문화공원
내용 : 제주돌문화공원은 한라산 영실에서 전해 내려오는 설문대할망과 오백장군 전설을 핵심 주제로 삼고 있다. 한라산과 오름들을 배경으로 아들들을 위해 애쓰다 자기 몸을 바친 설문대할망의 숭고한 모성애와 오백아들들의 슬픈 영혼을 달래기 위해 9기의 위령탑을 쌓았다. 이 9기에는 여러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즉 한라산 영실의 오백장군바위 499의 9와 제주돌문화공원주소 교래리 119번지의 9 그리고 북제주군과 목석원의 협약일인 1월 19일의 9 제주돌문화공원 기공일 9월19일의 9를 따서 9기의 돌탑을 쌓았다.


제목 : 제주돌문화공원(불탑사원당사지오층석탑 복제)
주제 : 오층석탑돌문화공원불탑사
내용 : 원(元) 순제의 제2황비였던 기황후의 간청에 의하여 원당봉 자락에 원당사와 함께 불탑을 세웠다고 전한다. 그러나 당시의 사찰은 화재로 소실되었고 지금은 제주도내의 유일한 불탑인 오층석탑만 남아있다. 각 층의 지붕돌과 몸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어져 조립되었다. 각 층의 몸돌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으며 1층 몸돌의 정면에만 불상을 모셔두는 방인 감실이 마련되었다. 지붕돌의 네 귀퉁이는 처마끝처럼 살짝 올려 마무리하였으며 끝에 풍탁이 달려 있었던 구멍이 뚫려있다. 받침돌에는 앞면과 좌ㆍ우면에 안상을 새겨 장식하였다. 원당사지 오층석탑은 받침돌이나 지붕돌의 모양 등으로 볼 때 지방색이 강했던 고려시대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국가지정 보물 제11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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